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넬리크 2세 (문단 편집) === 아내 === 메넬리크는 세번 결혼했지만 아내인 황후들로부터 단 한명의 아이도 낳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 의해 몇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 중 3명을 자신의 자손으로 인정했다. 1864년, 메넬리크는 에티오피아 황제 투아드로스 2세의 권유를 받아들여 황제의 딸 알타쉬와 결혼했다. 그러나 메넬리크는 1년만에 아내를 버리고 쇼아로 도주했다. 이후 알타쉬는 아드와의 족장 Dejazmatch Bariaw Paulos와 재혼했다. 1865년, 메넬리크는 우제로 베파나 가체프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17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갔고, 메넬리크는 아내를 매우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메넬리크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고, 메넬리크와의 결혼 이전 낳았던 아이들의 앞날을 확보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이후 베파나는 남편이 옹립한 황제 요하네스 4세와 은밀히 접촉하여 메넬리크를 타도하고 자신의 아들을 쇼아의 왕으로 앉히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1882년, 음모는 발각되었고 베파나는 메넬리크와 이혼한 뒤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메넬리크는 여전히 그녀에게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혼 후 그녀와 화해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친척들과 신하들이 새 황후를 들이라고 요청하자, 그는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들은 짐에게 한때 베파나를 응시했던 바로 그 눈으로 다른 여성들을 보라고 하는가?" 그래서 1883년, 메넬리크는 테이투 베투와 결혼했다. 테이투 베투는 이전에 네번 결혼했기 때문에, 메넬리크는 그녀의 다섯번째 남편이었다. 테이투 베투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지만 남편이 죽을 때까지 보좌했다. 그녀는 황실과 가까운 귀족으로 울로 지역의 베지마 일대의 주요 가문의 일원이었다. 그녀의 삼촌 라스우브는 아폴로 가문의 오로모계 통치자인 라스 구가사 무르사의 후손들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문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5천 명의 병사들을 모아 아도와 전투에 참전해 메넬리크의 승리에 일조했다. 말년에 가면 메넬리크는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1909년 메넬리크가 뇌졸중에 걸려 업무를 보지 못하게 되자, 황후인 테이투 베투가 그를 대신해 제국을 통치했다. 테이투는 여러 부족들의 자제들과 메넬리크의 큰 딸 자우디투 등 주요 왕실 자녀들 간의 정치적 결혼을 주선했다. 그러나 1910년 울로의 귀족 리지 이야수는 쇼아와 티그레이의 귀족들과 함께 음모를 꾸며 테이투 베투를 권좌에서 강제로 축출하고 섭정 위원회를 구성해 아무것도 못하는 메넬리크 대신 자신들이 제국을 통치했다. 테이투는 그저 뇌졸중으로 고통받는 남편을 간호하는 역할만 담당했고 정치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1913년 12월 12일 메넬리크가 사망한 후, 테이투 베투는 남편이 제대로 된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황궁 내 교회에 급히 매장되는 것을 지켜본 후 수도원에 감금되었다. 그후 1916년, 그녀의 의붓딸 자우디투가 [[이야수 5세]]와 섭정 위원회를 축출하고 여제에 등극한 후 그녀를 수도원에서 꺼냈다. 자우디투는 테이투 베투를 어머니로 모셨고 그녀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다. 테이투 베투는 1918년 2월 11일 사망했고 남편 메넬리크의 곁에 묻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